허락받지 못한 입국: 2020.9
혹독했던 LA 입국 과정
어느덧 11월이다. 마지막 글을 쓴 게 두 달 전이니 정말 순식간에 시간이 흐른 듯하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난 9월 초 미국으로 입국을 못했다. 참 웃픈일이었는데 9월 초 출국 3일을 앞두고 LA County에서 대면 수업 전면 금지령을 모든 도시 내 학교에 알렸고, 공립대인 우리 학교는 그 명령을 '너무' 잘 들었다. 지난 두 달간을 Hybrid format을 주장하며 여타 다른 학교들과 궤를 달리해왔던 학교가 하루 만에 LA 지침을 "네!" 하며 받아들이며 나를 포함한 International들 입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 메일을 본 순간 나를 비롯해 모두 분개했지만 달리 수가 없었다. 미리 배정받고 지불까지 완료한 기숙사부터 핸드폰 요금제까지 막 바꾸려던 찰나에 이런 큰 변화가 생기니 참 아득했다.
하지만 이미 난 MBA를 빌미로 신체적 독립을 추구했기 때문에 싼 짐을 그대로 가지고 집 밖으로 나왔다. 강남역 근처에 Air Bnb를 통해 보름 정도 지내면서 어떻게 상황이 흘러가는지 보기로 했다.




태어나서 독립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던 터라; 약간 부끄러운 점, 나와서 산 첫 하루 이틀은 정말 불편하고 우울했다. 들어간 집 냄새도 뭔가 깨림칙하고 화장실부터 휴지까지 모든 게 그냥 다 찝찝해 보였다. 내 인성에 문제까지 있나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들었지만 여간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그렇게 1주일씩 집을 옮겨 다니며 다채로운 나의 '유목 생활'은 시작되었다. 이것조차 내가 경험하는 MBA의 독창적인 면으로 자위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의 변화를 조금씩 살갗으로 느껴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그냥 갈까? 미국" 난 솔직히 코로나 때문에 학교 캠퍼스를 가본 적도 없었고 그래서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니 개강을 했는데도 이렇게 온라인으로 듣고 있자니 답답함이 더했다. 비록 F-1 Visa는 유효한 신분으로 사용할 수 없지만 ESTA는? 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바로 여러 사례들을 '네이빙'하기 시작했다.
결론: F-1과 ESTA는 상호 배타적인 비자 유형이 아닌, 독립적으로 그 방문 목적에 따라 존재할 수 있는 것.
나는 미친 듯이 기뻤다. 어렸을 때부터 하지 말라는 건 꼭 더 하고 싶었고, 하고 싶은 건 더 해야 하는 성격 때문인지 난 미국에 일단 가야 할 거 같았다. 짐은 이미 싸져 있었다. 2주일 간의 유목 생활은 내게 언제나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패키징 기술을 안겨주었다.


그 당시 미국에서 들어온 절친 중 한 명과 마침 같이 살던 때였는데 난 이렇게 같이 한 달 보내기로 한 약속을 뒤로 한 채 홀라당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 입국 심사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가늠이 안 갔다. 아무렇지 않게 들여보내 줄 것 같았으면서도 워낙 예민한 시국이기에 입국 자체를 F-1이 아닌 신분으로 왔으면 deny 놓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국과 동시에 불길했던 예감은 적중했다. 웬걸 까칠해 보이는 Hispanic과 인터뷰를 했는데 일단 F-1이 있는데 왜 여행 비자로 오는지 자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혼자 분노하기 시작했다 (나도 이 부분에서 왜 얘가 분노했는지 아직도 모름). 자기 퇴근시간이라며 가야 한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그러더니 난생처음 무슨 오피스 같은 곳을 갔는데 나 말고도 아시아권에서 온 학생 및 어른들이 꽤 있었다. 난 30분 넘게 내가 학생 신분이지만 유효하지 않은 F-1 상태임을 강조해 여행 비자로 온 것임을 증명해야 했다. 마침내 approved. 진짜 기분 최악이었다. 내 나라가 아닌 타지에서 마땅한 권리를 행사하고 사는 게 쉽지 않음을 난 이때부터 깨닫기 시작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예민한 시국이었고 그런 상황에선 더욱이 자국민의 안위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타국에서 오는 외국인들에게 호의적일 리 없다 생각했다.
눈으로 목격한 LA 실태
한국에서 매일 눈 뜨면 검색해봤던 Keyword: US Corona Trend. 이제 그래프가 아닌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였다. 기회.. 목숨을 건 기회랄까. 한국에서부터 가장 많이 챙겨 온 마스크를 2중으로 레이어드해서 쓰는 신공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선보였다.
LA County에서 코로나 경계 수준에 기준이 되는 데이터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 아래 사이트 Corona Dashboard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건 두 가지: 1) Test Positivity Rate, 2) Daily New Cases reported. 여기서 대단히 긍정적인 부분이자, LA에서도 눈여겨보는 1)의 지표가 눈에 띄게 downward trend를 보이고 있다. 참고로 코로나로 인한 위험을 4단계로 분류해 미국은 관리하고 있는데 LA는 2번째로 위험한 단계인 Substantial Tier II이며, 만약 2)가 최근 2주간 7k 명 이하로 이어진다면 1단계 완화된 레벨인 Moderate Tier III로 격하되게 된다. 하지만 이 부분이 아직 14k 수준으로 배 이상 높은 수준이라 아직 이른 회복을 기대하기엔 이른 시점이긴 하나 확실한 점은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하는 이런 통계적 사실 외 내가 느낀 부분이다.
- 공원으로 변해버린 학교 캠퍼스




첫 캠퍼스 방문기. 대략 오후 4시쯤이었는데 우리나라 대학처럼 주말에 정문을 걸어 잠근다거나 그런 걸 우려했던 나로서는 열려있는 문을 보고 일단 기뻤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넓었다. 근데 들어갈 수 있는 건물은 거의 없었고 심지어는 화장실도 이용할 수 없는 지경이었으니 얼마나 학교 차원에서도 문제를 심각하게 인지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너무 따뜻했던 날씨와 조금이나마 간접적으로 back to school의 감정을 되살려 준 캠퍼스 잔디에 앉아 멍 때리고 있던 몇 학우들의 존재에 감사했다. 그렇게 생각 없이 1시간 정도를 걸었는데 몇 번이나 머릿속에 맴돌았던 생각.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어땠을까 이곳은?"


그리고 찾아간 경영관. 학부시절 우리 대학도 상경대가 맨 꼭대기에 있었는데 이건 글로벌 트렌드인가 보다. 앤더슨관도 꼭대기는 아니지만 정상 즈음 위치해있었고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다행히 내부를 지키고 있던 직원 한 명에게 매우 화장실이 급한 보디랭귀지로 이번 새로 리모델링한 Marion Anderson Hall은 입성해볼 수 있었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고급 진 마감재. 하.. 여기서 조 모임하고 해야 하는데 이런 생각뿐이었다. 한적하게 그렇게 경영관까지 둘러보고 학교를 나섰다. UCLA Store까지 모두 닫은 상황이라 뭐 더할 게 없었다. 한적하고 평화로운 캠퍼스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 MBA Networking Event: AnderCup





MBA의 꽃은 네트워킹이다. 많이들 얘기한다. "아니 사람 못 만나는데 MBA를 왜 해?" 이런 얘기 제일 많이 들었다. 난 근데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었다. "네트워킹이 뭔데? 얼굴 직접 보고 같이 술 마시고 시시덕 거리면서 같이 놀고 인스타 친구 맺는 거?" 난 아니라고 생각했다. 극단적인 예로, 인터넷이 발달하기 훨씬 이전 (좀 극단적으로;) 새 다리에 쪽지 부쳐서 이국 땅에 전문을 보냈던 시기부터 네트워킹은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네트워킹이 MBA의 꽃이라는 말은 맞다.
MBA는 2년이라는 압축된 기간 동안 학생 단 한 명마다 고유의 올바른 Frame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다채로운 컬러를 가진 타 학생들과 맘껏 교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오히려 이전보다는 조금 더 느린 속도로 우린 서로 깊이 알아갈 수 있다. 하지만 remote learning이 가져다준 조금의 더 많은 시간적 여유는 더 퀄리티 있는 네트워킹을 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한다. '한번 말 걸기 위해 잠깐 Student Directory에서 찾아 본 그 친구의 배경과 관심사'. 이 하나만으로도 우린 첫 네트워킹 시작점의 무게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MBA는 대면이지. 그래서 미국에 있는 동안 최대한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나 가고 싶은 행사들은 미리 신청해 참가했다. 참고로 UCLA 기준 굉장히 제한적인 형태의 Social Event들이 열렸고, 내가 참가한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Santa monica 해변에서 열린 비치 발리볼 토너먼트였다. 거기서 정말 Zoom에서만 봤던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무슨 계속 시합을 하는데 참고로 나는 아직 그때 탄 피부에서 회복하지 못했다. 백인들은 정말 안 타는데 난 백인이 아니라는 걸 간과했다. 그때의 실크 같았던 산타 모니카 물살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시원하고 부드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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